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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공연 후기 
작성자 박형석 등록일 2020-10-29 조회수 240
티켓 오픈하고 바로 예매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매 초반 아직 티켓이 많이 남아 있을 때, 딱히 누구와 같이 가겠다는 생각 없이, 좋은 공연이라서 자리가 있을 때 사 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평소와는 달리 넉 장을 사두었는데 자연스레 같이 갈 분들이 생겨 함께 가게 되었다. 경기국악당은 다른 공연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해 내 차로 네 명이 함께 움직였는데 서울서 출발한 우리는 퇴근시간과 맞물려 가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공연장에 도착해 티켓을 받으니 한아름 선물꾸러미를 준다. 무릎담요로부터 핫팩, 해충 퇴치 에센스, 마스크 스트랩, 야광팔찌, 공연 관련 브로셔 등등이 있었다. 물론 일부 협찬 받은 물품들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20,000원 짜리 티켓을 골드회원 할인을 받아 14,000원에 샀는데 이렇게 많이 주어도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욱이 경기지역화폐로 장당 8,000원씩이나 페이백을 해 주니 티켓의 실제 구매 가격은 6,000원으로 떨어진다. 직원들의 환한 미소가 길이 막혀 피로에 젖은 마음을 풀어주었다. 포토존 사진을 찍는데 너무 멋진 곳에 포토존을 설치해 놓은 경기국악원의 센스가 돋보였다. 포토존 옆에는 낙락장송이 있고 뒤에는 호젓한 정자가 놓여 있어 정말 운치 있는 곳이었다.

살짝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니 이날의 공연장인 태극마당이다. 무대 앞 플로어석에는 11열로 110석 정도의 플라스틱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뒷쪽 계단이 있는 곳의 좌석에도 다리가 없는 의자에 역시 100석 정도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날 공연은 최근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한국관광공사 홍보비디오의 인기 덕인지 전석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무대 양옆에 설치해 놓은 대형 디스플레이에서는 이전에 공연된 조선클럽의 공연 녹화물을 틀어주고 있었는데, 지난 6월에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던 이희문과 놈놈의 무대 장면이었다. 공연시간 5분 전이 되자 디스플레이에 카운트다운 표시가 뜨고 조선클럽의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는 신윤복의 <주유청강(원화에 있는 양반들은 CG로 다 지워버린 수정된 화면이다.)>의 인물 옆으로 띄운 말풍선 속에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의사항을 적는 센스 있는 모습도 전개되었다.

이윽고 이날치 멤버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늘 그랬듯이 아무 말 없이 '범 내려온다'를 부르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난 6월 LG아트센터에서도 같은 공연을 봤지만 야외에서 보는 맛은 또 색달랐다. 당시에는 이들을 유튜브 온스테이지 영상으로 한 번 보았을 뿐, 실연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 좀 생소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 봤다고 조금 여유를 갖고 멤버들이나 음악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일단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것과는 전혀 다른 시끄러운 락이었으나 그 음악이 묘하게도 판소리와 잘 어울렸다. 그러고 보면 국악은 서양의 음악들과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이날치의 리더 장영규는 2014년에 결성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다 홀연 3년만에 해체된 씽씽의 결성을 주도했었다고 알고 있는데, 씽씽의 해체 이후 이날치를 결성하여 또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보컬의 중심인 안이호는 래퍼를 연상시키는 의상에 실제로 판소리 중간중간 랩도 섞어서 부르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여성 보컬 세 명은 각기 특색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나래의 소리가 강렬한 느낌의 저음이라면 권송희의 소리는 판소리치고는 상당히 매끄러운 고음의 느낌이 들었고 신유진은 강한 목소리에 고음을 가지고 있어서 힘있는 표현에 능했다. 이들은 각자 파트를 나눠서 적절하게 창을 분담했는데 비교적 목소리의 특성에 맞춰 분담이 되어 신선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이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노래를 부른 순서는 원작인 <수궁가>의 순서와는 무관했는데, 어떤 기준에서 이런 순서로 노래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음악적 요인에 맞춘 것이리라 생각됐다. 인터넷에 올라와 이들의 노래 가운데 가장 유명해진 '범 내려온다'는 별주부가 토생원을 호생원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여 내려온다는 내용의 노래인데 중독성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토끼가 용궁에 도착한 뒤 용왕의 명에 의해 토끼를 잡는 과정을 그린 '좌우 나졸'. 용궁에 사는 다양한 어류들이 용왕 앞에 인사를 드리는 장면을 묘사한 '어류 도감', 용왕이 걸린 병을 치유하느라 사용한 온갖 약제의 이름을 나열한 '약성가', 그리고 토끼가 요왕 앞에서 자신을 구할 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등 11곡의 노래가 1시간 반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 김보람이 이끄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무용수들이 다양한 복장으로 갈아 입어가며 등장하여 춤을 추었는데, 김보람은 백댄서 출신으로 시작해서 현대무용으로 넘어온 보기 드문 경력의 소유자로 그의 춤은 빠른 템포에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역동적인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만히 보면 유사한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꽤나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그의 현대무용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이날치의 노래들과 너무 잘 어울려 도대체 어떻게 안무를 짠 것인지 감탄하게 된다.

이날치의 연주로 한껏 흥이 올랐던 객석의 분위기는 앰비규어스의 무용수들이 등장하며 한층 더 무르익었고, 자리에 앉아서 들썩이며 춤을 추는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은 색동으로 된 복장을 입고 등장할 때에는 객석 사이사이를 누비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이들이 그 유명한 조선시대에 입었던 각양각층의 복장들을 하고 나타났을 때에는 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록 임시로 가설된 무대이기는 하지만 경기도국악원 태극마당의 음향은 상당히 좋았다. 인근에 인가가 전혀 없는 곳이라 음량에 제한을 받지 않았으며 지형이 협곡 속에 있는 모양이라서 소리의 울림이 매우 훌륭했다. 아울러 조명도 다양한 색상에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되었으나 과하지 않아 좋았고 공연장의 분위기를 업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모든 연주 순서가 끝나고 관객들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앵콜을 외치자 이들은 '범 내려온다'를 다시 한 번 연주해 주었는데, 플로어석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즐겼다. 이 공연의 부제처럼 조선시대의 클럽이 있었더라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야 워낙 몸치에다 이런 류의 음악에 그닥 취향이 있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앉아서 나도 모르게 함께 박자를 맞춰 발을 흔들게 될 정도로 흥이 났다.

아쉬운 점도 한두 가지 있기는 했다. 요즘 관객들은 대부분 공연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커튼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은 커튼콜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여자 분이 다가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제지를 했다. 경기국악원의 직원들은 모두 스탭이라고 쓰인 목걸이를 하고 있었으나 그 분은 아무 표식이 없어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제지하는지 좀 황당했다. 일반적으로 커튼콜 사진은 허용이 되기 때문에 난 그러거나 말거나 사진을 커튼콜 찍기는 했으나 좀 불쾌했던 건 어쩔 수 없는데, 지금도 그 분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저렴한 티켓 가격에 많은 선물,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에 무엇보다 수준 높은 공연으로 최고의 만족감을 준 공연의 하나였다. 내년에도 좋은 연주자와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바라건데 부디 요즘 이날치 못지 않게 핫한 <악단 광칠>을 꼭 불러주시길 바란다. 그들이 오면 두말 않고 다시 지인들과 용인까지 달려갈 것이다.